한문학사 한시 해석
맥수지가
기자(箕子)가 고국 은(殷)나라가 망한 뒤 황폐해진 궁궐에 보리와 기장만 무성한 것을 보고 한탄하며 불렀다는 노래로, 나라가 망함을 한탄한 노래의 의미로 쓰임.
맥수지가(麥秀之歌)라고도 함.
기자가 주나라에 조회가는 길에 옛 은허를 지나다가, 궁실이 허물어져 그 터에 벼왈 기장이 자라는 것을 보고 맥수가를 지었는데,
노래를 보면, “보리 이삭은 점점 자라고/벼와 기장 기름지기도 해라/저 교활한 아이는/나와는 사이가 좋지를 않네(麥秀漸漸兮 禾黍油油兮 彼狡童兮 不與我好兮).”라 하였다.
시 속의 교동(狡童)은 은나라의 폭군 주(紂)를 가리키는 것으로, 그의 포학한 정치로 은나라가 결국 망하게 되었음을 풍유한 것이다.
은나라의 백성이 이 노래를 듣고서 모두 눈물을 흘렸다고 전한다. 후대에 전(轉)하여 ‘맥수지탄(麥秀之歎)’은 고국의 멸망을 한탄하는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공무도하가
공무도하(公無渡河) : 공(公) 하지마라(無) 강을 건너는 것(渡河)을
공경도하(公竟渡河) : 공(公)은 마침내(竟) 강을 건넜다(渡河)
타하이사(墮河而死) : 떨어졌다(墮) 강(河)에 그래서(而) 죽었다(死)
당내공하(當奈公何) : 그것을(當) 어떻게 해야하나(奈) 공(公)을 어떻게 해야하나(何)
임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公無渡河)
임은 결국 물을 건너시네.(公竟渡河)
물에 빠져 죽었으니,(墮河而死)
장차 임을 어이할꼬.(將奈公何
등장인물 :
등장인물 1. 백수광부 - 흰머리(백수)에 미친(광) 남편(부)
등장인물 2. 백수광부의 아내
등장인물 3. 곽리자고 - 뱃사공. 백수광부가 물에 빠져죽고 이어서 그의 부인이 빠져죽는 것을 목격함.
등장인물 4. 여옥 - 곽리자고의 부인
줄거리 :
백수광부가 강을 건너려는 것을 백수광부의 부인이 말렸으나 백수광부는 결국 강을 건너다가 빠져죽었다. 백수광부의 부인은 그것을 안타까워하며 공무도하가를 지어 부르고 자기도 이어서 강에 빠져 죽었다.
이것을 목격한 뱃사공 곽리자고는 퇴근 후 자신의 부인인 여옥에게 그 사실을 이야기 해 주었다. 여옥은 이야기가 슬퍼서 공후라는 악기를 꺼내어 공무도하가를 불렀다.
공후인은 조선(朝鮮)의 진졸(津卒) 곽리자고(霍里子高)의 아내 여옥(麗玉)이 지은 것이다. 자고(子高)가 새벽에 일어나 배를 저어 가는데, 머리가 흰 미친 사람이 머리를 풀어헤치고 호리병을 들고 어지러이 물을 건너고 있었다. 그의 아내가 뒤쫓아 외치며 막았으나, 다다르기도 전에 그 사람은 결국 물에 빠져 죽었다.
이에 그의 아내는 공후(箜篌)를 타며 ‘공무도하(公無渡河)’의 노래를 지으니, 그 소리는 심히 구슬펐다. 그의 아내는 노래가 끝나자 스스로 몸을 물에 던져 죽었다.
자고가 돌아와 아내 여옥(麗玉)에게 그 광경을 이야기하고 노래를 들려주니, 여옥이 슬퍼하며, 곧 공후로 그 소리를 본받아 타니, 듣는 자가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다. 여옥은 그 소리를 이웃 여자 여용(麗容)에게 전하니 일컬어 공후인이라 한다.
유리왕은 왕비송씨(宋氏)가 죽자, 골천사람의 딸 화희(禾姬)와 한인(漢人)의 딸 치희(雉姬)를 계실로 얻었다. 두 여자가 사랑을 다투어 서로 화목하지 않자, 왕은 양곡(凉谷)의 동서에 두 궁을 짓고 각기 살게 하였다.
뒤에 왕이 기산(箕山)으로 사냥을 나가서 7일간을 돌아오지 않은 사이에 두 여자가 서로 다투게 되었는데, 화희가 치희에게 “너는 한가(漢家)의 비첩으로 어찌 무례함이 심한가?” 라고 꾸짖으니, 치희가 부끄러워 원한을 품고 도망쳐 돌아갔다.
왕이 이를 듣고 말을 달려 쫓아갔으나, 치희는 노하여 돌아오지 않았다. 왕이 일찍이 나무 밑에 쉬면서 꾀꼬리가 날아 모이는 것을 보고 <황조가>를 지었다고 한다.
내용은 “펄펄 나는 꾀꼬리는 암수가 정다운데 외로운 이 내몸은 뉘와 함께 살아볼까
을지문덕
을지문덕이 수나라 장수인 우중문에게 보낸 한시로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실려 전한다. 우중문이 30만 대군으로 침공해 왔을 때, 을지문덕이 적장을 희롱하며 지어 보낸 시이다. 우중문이 이 시를 받자 때마침 피로하고 굶주린 군사들은 싸울 기력을 잃었다고 전한다. 원시(原詩)는 다음과 같다.
귀신같은 책략은 하늘의 이치를 다했고 [신책구천문(神策究天文)]
오묘한 꾀는 땅의 이치를 깨우쳤네 [묘산궁지리(妙算窮地理)]
싸움에서 이긴 공이 이미 높으니 [전승공기고(戰勝功旣高)]
만족함을 알고 그만두기를 이르노라 [지족원운지(知足願云止)]
신라 진덕여왕이 당나라 황제에게 올린 송시(頌詩).
어떤 전적에는 결루된 곳이 있기도 하고 전적간에 글자의 차이가 있기도 하여 시어를 고정시키기 어려운 점이 있다. <태평송>은 주변국가를 모두 복속시켜 위세를 떨친 당나라의 위대한 문무의 힘과 통치력을 예찬한 내용으로 삼국통일의 대업을 노린 신라의 야심적인 외교시이다.
大唐開洪業 대당(大唐) 큰 왕업(王業)을 개창하니
巍巍皇猷昌 높디높은 황제의 포부 빛나도다.
止戈戎衣定 전쟁을 그치니 천하가 안정되고
修文繼百王 전 임금 이어받아 문치를 닦았도다.
統天崇雨施 하늘을 본받음에 기후가 순조롭고
理物體含章 만물을 다스림에 저마다 빛나도다.
深仁諧日月 지극한 어지심은 일월과 짝하고
撫運邁時康 시운(時運)을 어루만져 태평으로 나아가네.
幡旗何赫赫 깃발들은 저다지도 번쩍거리며
鉦鼓何鍠鍠 군악 소리 어찌 그리 우렁찬가!
外夷違命者 명을 어기는 자 외방 오랑캐여
剪覆被天殃 칼날에 엎어져 천벌을 받으리라.
淳風凝顯遍 순후한 풍속 곳곳에 두루 퍼지니
遐邇競呈祥 원근에서 다투어 상서(祥瑞)를 바치도다.
四時和玉燭 사철이 옥촉처럼 고르고
七曜巡萬方 해와 달은 만방을 두루 도네.
維嶽降宰輔 산악의 정기 어진 재상 내리시고
維帝任忠良 황제는 신하를 등용하도다.
五三成一德 삼황오제(三皇五帝) 한 덕을 이루니
昭我唐家皇 길이길이 빛나리라! 우리 당(唐)이여
《해가(海歌)》를
구호구호출수로 거북아 거북아/ 수로부인을 내어라 창작 동기가 드러남
약인부녀죄하극 남의 아내를 앗은 죄 얼마나 크냐 근거-합리적 사고
여약패역불출헌 네 만약 어기어 내 놓지 않으면
입망포략번지끽 그물을 넣어 잡아 구워 먹으리 그물 : 포획의 매개체
신라 성덕왕 때 순정공(純貞公)이 강릉태수(江陵太守)로 부임하는 도중, 바닷가의 한 정자에서 점심을 먹을 때 돌연 용이 나타나 순정공의 아내 수로부인을 바닷속으로 납치하였다. 공이 어찌할 바를 모를 때 한 노인이 지나다가 말하기를 "옛말에 뭇사람의 입길은 쇠도 녹인다 하였으니, 용인들 어찌 이를 두려워하지 않겠소. 모름지기 경내(境內)의 백성을 모아 노래를 지어 부르며 막대기로 바닷물을 치면 부인을 찾을 것이오"라고 하였다. 공이 《해가(海歌)》를 지어 뭇사람과 더불어 외치며 물가를 막대기로 치니 과연 용은 부인을 받들고 나타났다 한다
空門寂莫汝思家 절 안이 적막하니 집 생각이 간절하여
禮別雲居下九華 작별의 예 올리고 구화산을 내려가는구나
愛向竹欄騎竹馬 대나무 난간에 올라 죽마 타기는 좋아하지만
懶於金地聚金沙 금지에서 금모래 모으는 것은 싫어하는구나
添甁澗底休招月 항아리에 물을 채워 달을 청하던 일도
烹茗甌中罷弄花 차를 달여 잔 속에 꽃을 띄우던 놀이도 그만 두려네
好去不須頻下淚 이제 그만 눈물을 거두고 편안히 떠나려무나
老僧相伴有煙霞 노승은 안개와 놀을 벗 삼아 살리라
송동자하산 신라왕자 김지장스님은 / 동자승을 산아래로 내려보내며.
신라 시대의 왕자 김지장(金地藏)의 시. 《전당시(全唐詩)》 권808에 수록되어 있다. 김지장이 당나라 숙종(肅宗) 때에 중국 구화산(九華山)에 은거하여 지은 시로, 시의 내용은 “고국으로 돌아가면 오죽 좋으련만, 그렇다고 자주 눈물 흘릴 것 있느냐!”하는 것으로, 타국에서의 적막함과 고향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담은 것이다. 고국으로 돌아가기를 열망하면서도 체념한 채 노승과 자연을 벗하며 살아가는 생활을 그리고 있다. 자연 속에서 기거하는 심정을 묘사하고 있는 시로서, 아직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희귀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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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힐부득 과 달달박박 - 삼국유사 옮김
백월산(창원시 북면 백월산) 동남쪽 3000보쯤 되는 곳에 仙川村에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이 살았다. 그들은 “... 속세의 얽힌 것을 풀어 버리고 무상의 도를 얻기로..” 하여 백월산 무등곡으로 출가하여 수양하는데 부득은 미륵을 구하고 박박은 미타를 염불하였다. 성덕왕 8년 己酉 4월 8일, 해가 질 무렵 박박의 北庵에 어여쁜 낭자가 사향냄새를 풍기며 찾아와 하룻밤 묵어 가기를 청하며 다음과 같이 “詞”(사-중국문장의 한 종류)를 지어 바쳤다.
行遲日落千山暮 행지일락천산모 걸음 늦고 해지니 온 산이 저물어
路隔城遙絶四隣 로격성요절사린 길은 멀고 마을도 멀어 사방이 끊어 졌소
今日欲投庵下宿 금일욕투암하숙 오늘 암자 아래에서 자고자 하오니
慈悲和尙莫生嚍 자비화상막생진 자비로운 화상께서는 성내지 마십시오
박박이 말하기를, 이 곳은 청정한 곳이라 여인을 들일 수 없소 하고는 문을 닫았다. 낭자는 다시 南庵으로가 부득에게 앞에서와 같이 청하며 한 “偈 (=誦)”를 올렸다.
日暮千山路(일모천산로) 해 저문 첩첩한 산 산길 가는데
行行絶四隣(행행절사린) 가도 가도 사방 인가 끊어졌다네
竹松陰轉邃(죽송음전수) 소나무 대의 그늘 더욱 깊건만
溪洞響猶新(계동향유신) 골짜기 냇물소리 새롭게 들려
乞宿非迷路(걸숙비미로) 자길 빔은 길을 잃은 때문 아니니
尊師欲指津(존사욕지진) 높은 스님 인도하기 위함이라네
願惟從我請(원유종아청) 바라건대 내 청만 들어주시고
且莫問何人(차막문하인) 누구냐고 묻지는 말아 주시오
부득이 불쌍하게 여겨 자리를 마련해주고 정신이 흐트러질까 열심히 염불을 외는데, 이 낭자 갑자기 産痛을 호소함으로 물을 끓여 이를 도왔다. 해산을 한 후, 낭자가 목욕 시켜주기를 청하는지라 또 더운 물로 몸을 씻어주니 갑자기 통 속의 물이 黃金液으로 변해지고 낭자가 목욕하기를 권하였다. 노힐부득이 마지못해 물에 몸을 담그자 향기가 진동하며 부득의 몸이 황금빛으로 변하면서 옆에 연꽃 좌대가 나타나자 낭자가 앉기를 권하며 “나는 관음보살이며 대사는 大菩提를 얻은 것이오” 하고는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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花王誡(화왕계)-薛聰(설총)
神文大王以仲夏之月(신문대왕이중하지월) : 신문대왕이 한여름에
處高明之室(처고명지실) : 높고 밝은 방에 있으면서
顧謂聰曰(고위총왈) : 설총을 돌아보아 말하기를
今日宿雨初歇(금일숙우초헐) : “오늘은 오래 내리던 비가 처음으로 개고
薰風微凉(훈풍미량) : 더운 바람이 조금 시원하니
雖有珍饌哀音(수유진찬애음) : 비록 맛있는 음식과 애절한 음악이 있다할지라도
不如高談善謔(부여고담선학) : 고상한 이야기와 재미있는 우스개로
以舒伊鬱(이서이울) : 울적한 마음을 푸는 것만 못하리라.
吾子必有異聞(오자필유이문) : 그대는 반드시 색다른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니
盍爲我陳之(합위아진지) : 어찌 나를 위하여 들려주지 않는가?”라고 하였다.
聰曰(총왈) : 설총이 말하기를
唯臣聞昔花王之始來也(유신문석화왕지시래야) : “그렇습니다, 신이 들으니 옛날에 화왕이 처음 왔을 때
植之以香園(식지이향원) : 향기로운 꽃동산에 이를 심고
護之以翠幕(호지이취막) : 푸른 장막으로 보호하였는데
當三春而發艶(당삼춘이발염) : 봄날이 되어 요염하게 피어나
凌百花而獨出(릉백화이독출) : 온갖 꽃들을 능가하여 홀로 뛰어났습니다.
於是自邇及遐(어시자이급하) : 이에 가까운 곳으로부터 먼 곳에 이르기까지
艶艶之靈(염염지령) : 요염한 넋
夭夭之英(요요지영) : 어여쁜 꽃들이
無不奔走上謁(무불분주상알) : 빠짐없이 달려와서 뵈었는데
唯恐不及(유공불급) : 오직 이르지 못할까 두려워하였습니다.
忽有一佳人(홀유일가인) : 홀연히 한 미인이
朱顔玉齒(주안옥치) : 붉은 얼굴 옥 같은 이에
鮮粧靚服(선장정복) : 곱게 화장하고 멋진 옷을 차려 입고
伶俜而來(령빙이래) : 간들간들 걸어 와서
綽約而前曰(작약이전왈) : 얌전하게 앞으로 나와서 말했습니다.
妾履雪白之沙汀(첩리설백지사정) : “첩은 눈 같이 흰 모래밭을 밟고
對鏡淸之海(대경청지해) : 거울 같이 맑은 바다를 마주 보며
而沐春雨以去垢(이목춘우이거구) : 봄비로 목욕하여 때를 씻고
快淸風而自適(쾌청풍이자적) : 맑은 바람을 상쾌하게 쐬면서 유유자적하는데
其名曰薔薇(기명왈장미) : 이름은 ‘장미’라고 합니다.
聞王之令德(문왕지령덕) : 왕의 훌륭하신 덕망을 듣고
期薦枕於香帷(기천침어향유) : 향기로운 휘장 속에서 잠자리를 모시고자 하는데
王其容我乎(왕기용아호) : 왕께서는 저를 받아주시겠습니까?”
又有一丈夫(우유일장부) : 또 한 장부가
布衣韋帶(포의위대) : 베옷에 가죽 띠를 매고
戴白持杖(대백지장) : 허연 머리에 지팡이를 짚고
龍鍾而步(용종이보) : 힘없는 걸음으로
傴僂而來曰(구루이래왈) : 구부정하게 걸어와서 말했습니다.
僕在京城之外(복재경성지외) : “저는 서울 성밖의
居大道之旁 (居大道之旁 ) : 한길 가에 살고 있습니다.
下臨蒼茫之野景(하임창망지야경) : 아래로는 푸르고 넓은 들판의 경치를 내려다보고
上倚嵯峨之山色(상의차아지산색) : 위로는 우뚝 솟은 산의 빛에 의지하고 있는데
其名曰白頭翁(기명왈백두옹) : 이름은 ‘할미꽃’이라고 합니다.
竊謂(절위) : 가만히 생각건대
左右供給雖足膏粱以充腸(좌우공급수족고량이충장) : ‘비록 좌우의 공급이 풍족하여 기름진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茶酒以淸神(다주이청신) : 차와 술로 정신을 맑게 할지라도
巾衍儲藏(건연저장) : 상자 속에 가득 감추어두어도
須有良藥以補氣(수유양약이보기) : 반드시 좋은 약이 있어서 기운을 돋우고
惡石以蠲毒(오석이견독) : 극약으로 병독을 제거해야 합니다.’
故曰(고왈) : 그러므로
雖有絲麻(수유사마) : 비록 생사와 삼베가 있다 해도
無棄菅蒯(무기관괴) : 왕골과 띠풀을 버리지 않아서
凡百君子(범백군자) : 모든 군자들은
無不代匱(무부대궤) : 결핍에 대비하지 않는 일이 없다 하오니
不識王亦有意乎(부식왕역유의호) : 왕께서도 혹시 이런 생각을 갖고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고 하니
或曰(혹왈) : 어떤 이가 말하기를
二者之來(이자지래) : “두 명이 왔는데
何取何捨(하취하사) : 어느 쪽을 취하고 어느 쪽을 버리시겠습니까?” 하니
花王曰(화왕왈) : 화왕이
丈夫之言(장부지언) : “장부의 말도
亦有道理(역유도리) : 또한 일리가 있지만
而佳人難得(이가인난득) : 어여쁜 여자는 얻기가 어려운 것이니
將如之何(장여지하) : 이 일을 장차 어떻게 할까?“라고 말했습니다.
丈夫進而言曰(장부진이언왈) : 장부가 나아가서 말하기를
吾謂王聰明識理義(오위왕총명식리의) : “저는 대왕이 총명하여 사리를 잘 알 줄 알고
故來焉耳(고래언이) : 그래서 왔을 뿐인데
今則非也(금칙비야) : 지금 보니 그렇지 않군요.
凡爲君者(범위군자) : 무릇 임금이 된 사람치고
鮮不親近邪侫(선부친근사녕) : 간사한 자를 가까이 하지 않고
疏遠正直(소원정직) : 정직한 자를 멀리하지 않는 이가 적습니다.
是以孟軻不遇以終身(시이맹가부우이종신) : 이 때문에 맹가는 불우하게 일생을 마쳤으며
馮唐郞潛而皓首(풍당랑잠이호수) : 풍당은 낭서(郎署)에 잠기어 흰 머리가 되었습니다.
自古如此(자고여차) : 옛날부터 이러하였거늘
吾其柰何(오기내하) : ‘저인들 그것을 어찌 하겠습니까?‘라고 말하니
花王曰(화왕왈) : 화왕이
吾過矣吾過矣(오과의오과의) : ‘내가 잘못했노라, 내가 잘못했노라.’라고 했습니다.”
於是王愁然作色曰(어시왕수연작색왈) : 이에 왕이 서운한 듯이 안색을 바로 하며 말하기를
子之寓言誠有深志(자지우언성유심지) : “그대의 우화는 진실로 깊은 뜻이 담겨 있도다.
請書之以謂王者之戒(청서지이위왕자지계) : 기록해두어 왕의 경계로 삼게 하라.” 하고
遂擢聰以高秩(수탁총이고질) : 마침내 설총을 높은 관직에 발탁하였다.
설총이 지은 우언적인 글.
≪삼국사기≫ 설총 열전에 실려있고, ≪동문선≫에서는 「주의 奏議」 편에 <풍왕서>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었다. 신문왕이 설총에게 울적한 심사를 풀 수 있는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을 때 설총이 왕에게 들려준 것이다. 화왕에게 장미와 할미꽃이 찾아와 각기 자신을 써달라고 청한다. 장미는 미모와 요염함을 내세워 임금을 곁에서 모시겠다고 청했고, 할미꽃은 서울 밖의 큰길 옆에 살면서 호연지기를 키우며 살았음을 내세운다. 여기서 큰길(大道)은 할미꽃이 군자의 도리에 따라 살아온 자임을 자부한 것으로 보인다. 더욱 할미꽃은 화왕이 비록 부족한 것이 없으나 좋은 약으로 원기를 보충하고 극약으로 독을 제거하는 것도 필요함을 역설하여, 자신의 역할이 바로 약과 같은 것임을 암시했다. 그럼에도 화왕이 장미에게 기울어지자, 할미꽃은 고래로 왕이 정직한 사람을 가까이 하고 요망한 무리를 멀리한 예가 드물다고 항변하니 결국 화왕이 잘못을 시인하고 할미꽃을 받아드린다는 내용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신문왕은 설총에게 그가 한 寓言이 깊은 뜻이 있으니 이 이야기를 적어 두어 왕자의 경계로 삼을 것을 청한다.
이 작품은 설총이 왕에게 치자(治者)의 도리를 직언하기보다 우언을 통해 암시하므로써 그의 유학정신과 문학성을 아울러 성취한 것으로 평가된다. 한편 장미를 요염한 여인으로, 할미꽃을 심성을 도야한 장부로 남성과 여성을 양극화시켜, 신라 통일 이후 남성우월의 지배원리가 강화된 유교적 원리가 엿보이며, 문학적으로는 후에 가전과 같은 의인문학의 새로운 문학적 표현영역을 개척하는데 기여한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