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서해의 <탈출기>에 대한 역사전기 비평
1. 최서해의 일생
- 최서해는 1901년 함경북도 성진에서 출생. 본명은 학송이며, 서해는 그의 호이다. 그는 유년 시절 아버지를 여위고 가난 때문에 보통학교조차 졸업하지 못했다.
-가난에 시달리던 그의 가족들은 서해 나이 열일곱 살에 간도로 이주한다. 그러나 간도에서의 생활도 극빈하여 그 전보다 나아진 것이 없었다. 그는 간도에서 막노동꾼이나 두부 장사, 나무 장사 등을 하며 생계를 이어간다. (이 체험은 작품 <탈출기>에 잘 드러난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서해는 가난했고 이 때문에 첫 번째 아내와 이혼하게 된다. 이후 서해는 다시 재혼을 하는데 이 둘째 부인이 첫 딸을 낳다가 죽게된다.
-1923년 귀국한 서해는 노동자 생활을 하다가 다시 결혼을 한다. 이후 1924년 단편 <고국>으로 등단한다. 서해는 이광수를 존경하였고 그를 찾아 상경하게 된다. 이광수는 그의 글을 읽고 평문을 써주거나 간간이 격려, 조언의 글을 보내주는 등 관계를 쌓는다.
-귀국해서도 노동을 하며 생활을 이어가던 서해는 생활이 일정치 못해서 떠돌이 생활을 하는데 이광수는 이런 서해를 안타깝게 여겨 절을 소개해준다. 서해는 두어달 절에서 살게 되었다. 이 때 세 번째 아내는 도망가고 이듬해 서해의 딸은 제대로 먹지 못해 죽게된다.
-1926년 서해는 친구 조운의 누이 조분려와 네 번째로 결혼하게 된다. 그 후 1932년 위문 협착증으로 수술받던 중 사망한다.
2. <탈출기>의 줄거리
- 주인공 ‘나’가 친구 김 군이 보낸 편지에 답하는 편지 형식의 글이다. ‘나’는 현재 xx단에 가입하여 집을 나왔으며 친구인 김 군은 그런 나에게 처자식과 어머님을 생각해서 집에 돌아가라고 촉구하는 편지를 김 군에게 보냈었다. ‘나’는 김 군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나’가 가족들을 두고 집을 나온 이유를 설명한다.
‘나’는 조선에서의 가난에 찌든 생활을 견디다 못해 아내와 어머니를 데리고 희망을 품고 간도로 향한다. 그러나 간도에서의 삶은 조선에서 보다 더욱 궁핍할 뿐이었다. 농사 지을 땅도, 땅을 살 돈도 없었던 주인공은 살기 위해 닥치는대로 아무 일이나 하게 되었다. 생선도 팔고 두부도 만들어 팔아보지만 시원치 않았고, 산에서 몰래 나무를 하다가 걸려서 중국 경찰서에 끌려가 두드려 맞기도 하였다. 가족들은 이틀 사흘 굶는 것이 대부분일 정도로 가난에 찌든 삶을 살아갔다. 그러던 중 ‘나’는 아내가 혼자 무언가를 먹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이것을 본 ‘나’는 아내에게 분노를 느낀다. 그러나 아내가 먹고 있던 것은 버려진 귤껍질이었고 그것을 안 ‘나’는 만삭인 아내를 의심한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이처럼 비참한 광경에 ‘나’는 분노를 느낀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현실은 나아지지 않는 것을 알게된 ‘나’는 “아무리 노력하고 충실하여도 우리는 우리의 생의 만족을 느낄 날은 없을 것”이란 걸 깨닫게 된다. ‘나’는 쉬지않고 일해도 나아지지 않는 생활, 심지어 아이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아내까지 나무를 하러 나서는 상황에 지쳐간다. ‘나’는 강도질을 해야 하는게 아닌가 할 만큼 궁지에 몰렸고 고민 끝에 열심히 살아도 도망칠 수 없는 가난은 사회 구조의 탓이라고 생각하고 이렇게 잘못된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집을 나서서 xx단에 들어가게 된다고 말하며 소설을 끝을 맺는다.
3. <탈출기>의 역사전기 비평
① 성실하게 살아가는 ‘나’ 그러나 가난한 삶
-이는 당시 조선의 일제 치하 아래 모순적인 사회구조가 반영된 것이다.
식민지 자본주의화의 진행: 토지조사사업과 산미증식계획=전체 인구 80%의 생존권 위협
*토지조사사업=1910년부터 1918년까지 일제가 조선에서 식민지적 토지제도를 확립할 목적으로 실시한 대규모의 조사사업
식량과 원료, 특히 미곡의 일본으로의 수출 증가를 위해 이를 지원할 수 있는 토지제도를 정비하고 일본 공업화에 따르는 일본 산업자본의 노동력 부족 문제를 조선의 소작농으로 충당하려는 목적
토지에 부착된 소작농을 토지 소유권 및 경작권으로부터 완전히 배제해버림으로써 일본 산업자본이 필요할 때에는 언제나 조선의 소작농을 일본공업을 위한 임금노동자로 전환시킬 수 있는 구조를 만들려는 목적
*산미증식계획=일제가 조선을 일본의 식량공급지로 만들기 위해 1920년부터 실시한 식민지 농업정책
약간의 쌀증산을 가져오긴 했지만, 일제의 식량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고 일본인의 토지겸병을 촉진했을 뿐, 조선인은 쌀 대신 오히려 잡곡을 더 많이 먹게 되었고, 소작료 증가, 과중한 수리조합비 때문에 농민들의 빈궁이 더욱 가속화 되었다.
② <탈출기>의 배경은 왜 간도인가
-작가 최서해가 어린 시절 간도에서 겪은 일을 바탕으로 쓰여진 자전적 소설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당시 간도로 많은 조선인들이 이주했다는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
-1910년 이래로 일제의 침략에 저항하기 위한 항일 운동의 기지를 찾아 간도로 많은 조선인들이 이주하였고 일제가 토지조사사업을 강행함으로써 농토를 탈취당한 농민들이 가난을 피해, 농사지을 땅을 찾아 간도로 이주하였다. 이처럼 일제에 수탈로 빈궁해진 이들에게 간도는 가난을 피할 수 있는 희망의 땅이었다.
-1926년에는 간도 지방의 중국인이 약 1만인데 반해 조선 사람의 숫자는 약 5만에 이르렀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소지한 농토는 전체의 52%정도 였으며 조선인들의 절반은 소작농이었다. 이는 만주 지역 전체 소작농의 93%에 이르는 숫자였다.
-<탈출기>에서 ‘나’의 가족들이 간도에서 빈궁한 삶을 벗어나기는커녕 중국인 들에게 핍박을 받는다. 실제로 당시 간도에서 조선인들은 타향살이를 하면서 중국인들에게 많은 설움을 당했다. 이러한 간도의 조선인들이 받은 설움은 작가 김동인의 <붉은 산>에서 조선인이 중국인 지주에게 맞아 죽는 모습에서도 잘 드러난다.
③ 작가 최서해가 가진 영향력
-1920년대 중반 많은 소설가들이 식민지 조선인들의 빈궁한 삶을 다루었다. 이들처럼 어려운 민중의 삶을 폭로한, 가난을 다룬 소설들을 ‘신경향파’ 문학이라 칭해진다.
-그런데 당시 대부분의 작가들은 유학파 같은 엘리트 지식인 계층인 것에 비해 최서해는 보통 학교 조차 졸업하지 못한 작가였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다른 지식인 출신 작가들과는 달리 이론이나 상상력이 아닌 직접적인 체험에서 유래한 작품 특유의 사실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신경향파 문학에서도 크게 주목받았다.
-소설가이자 평론가인 임화는 신경향파의 문학을 “낭만적이고 관념적인 박영희적 경향”과 “객관적 사실주의에 입각한 최서해적 경향”으로 나누어진다 말했으며 이는 이후 최서해가 한국의 계급문학과 리얼리즘 문학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여준다.
④ xx단에 들어간 ‘나’의 행동
“김군! 나는 더 참을 수 없었다. 나는 나부터 살려고 한다. 이때까지는 최면술에 걸린 송장이었다. 제가 죽은 송장으로 남(식구들)을 어찌 살리랴. 그러려면 나는 나에게 최면술을 걸려는 무리를, 험악한 이 공기의 원류를 쳐부수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자신의 가족들을 떠난 이유가 자신들을 가난의 구렁텅이로 빠뜨린 사회제도를 부수기 위함이며, 자신 역시 가족들을 생각하면 슬픔이 사무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런 가난의 구렁에 가족들을 두고 혼자 출가를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족들이 죽음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 이는 가족에 대한 책임을 외면하고 이상을 추구함으로써 도망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 같은 ‘나’의 행동은 극단적 빈궁이 ‘나’라는 인간의 정신과 행동에 미친 영향을 현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런 점에서 ‘나’가 xx단에 들어간 것은 지금의 시대에서 보면 비난 받을 행동이지만 가난하고 배고픈 삶이 만연한 당시의 시대를 고려해본다면 이해될 수 있는 관습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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